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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하는 인간


우리는 늘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상처 받지 않는 가족이 있을까? 아무래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라도 상처가 있을 수 있고, 겉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된다. 3자들의 입장에선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은 언덕 위의 부잣집 도련님, 아가씨들에게 의외의 상처가 많다는 건 그래서 참 아이러니 하다. 행복이라는 것, 상처라는 것. 지극히 주관적이기에 불특정 다수의 행복을, 상처를 헤아리지 못할 때가 있다. 내가 아니라고 해도 상대가 상처를 받았다면 치유해야 하고, 아무리 다른 사람은 행복하다 해도 내가 아니면 그건 행복의 기준이 될 수 없다. 때문에 가족 간의 관계는 어렵다. 가족들도 나와 같이 않기에 서로 조심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 이젠 조금씩 그 관계를 알 것 같다. 새로운 작가를 알게 되었다. 유명하지 않은 작가여서 망설인 부분도 있지만, 읽지 않았다면 분명 후회했을 것 같다. 이렇게 새로운 작가를 알아간다는 것. 완전 행복한 일이다. ‘양장 제본서 전기’는 자신의 출생에 의문을 품은 주인공이, 자신이 태어난 1983년 신문을 찾아 기원을 찾아가고, ‘실수하는 인간’은 폭력을 일삼는 아버지를 실수로 죽게 만든 남자의 또 다른 실수를 이야기 하고, ‘너를 닮은 사람’은 학교에서 선생으로부터 딸이 폭행을 당한 일로 주인공 여자가 학교에 찾아가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오래전 자신을 미술로 이끈 여자. 그리고 그 여자의 남자친구와 얽힌 소름끼치는 이야기. ‘폐쇄되는 도시’는 버려지는 노인을 주워 살아가는 젊은이의 모습을 그렸고, ‘돌아오다’는 일본식 가옥에서 사는 할머니와 손녀의 이야기 인데 한때 잘나가던 때를 회상하며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조금은 슬픈 이야기를 담았고, ‘지나간 미래’는 남편을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을 섬뜩하게 그렸다. ‘이곳에서 얼마나 먼’은 유아 성욕자 남편에게서 딸을 보호하기 위해 혼혈아를 의붓딸로 들여 그걸 방조하는 이야기 이고, ‘빛나는 상처’는 죽어서도 아들에 대한 걱정을 어쩌지 못해 뼛가루라도 다시 되돌아오는 엄마의 이야기다. 어느 것 하나 헛으로 읽을 수 없고, 어느 것 하나 남지 않는 게 없다. 그럼에도 너를 닮은 사람에선 남의 사랑을 빼앗았지만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이기적인 여자의 모습에서 소름이 끼쳤고, 무서웠다. 자신 뿐 아니라 남편과 아이에게 거짓의 삶을 살았던 여자. 그래서 그 여자를 닮은 사람이 자신의 곁에 오는 게 무서웠겠지. 또한 폐쇄되는 도시는 혹 우리의 미래의 모습이 아닐까 마음이 아팠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버리는 가족들. 언제 어느 곳에 버릴 테니 그들을 수거해 가라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수거(?)하며 돈을 버는 사람들이라니... 그런 상상력이 무섭지만 그게 남의 이야기라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우리는 언제나 가족이 제일 중요하다고 말한다. 가족이 무너지면 이 사회가 무너진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런 가족들이 사회에 넘쳐난다면 얼마나 큰 재앙이 될까? 엄마이고 아버지인 사람들이 나오지만 어디 하나 제대로 된 부모가 없다. 아이들은 태어난다고 해서 저절로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부모들은 거의 방치 수준으로 아이를 그냥 놔둔다. 그 아이들의 마음에 어떤 상처가 쌓이는지 누구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사람이 사람인 이유는 사람답게 살기 때문에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람답다는 것에 대한 생각의 경계가 모호해질 때가 있다. 이런 상처를 받고 이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까? 이건 단지 소설일 뿐이야. 라고 치부할 수 없는 건 이 사회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언의 폭력을 일삼는 부모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코 유쾌하거나 밝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어두워 우울해지지도 않는다. 다시 한 번 가족의 의미를, 사람과 사람의 상처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는 이 책. 참 매력적이다.
실수였다, 아니다 실수가 아니었다, 아니다 실수였다….
가족이라는 미묘하고도 불운한 근원에 대하여

2008년 「문화일보」신춘문예에 「양장 제본서 전기」가 당선되며 등단한 정소현의 첫 번째 소설집 실수하는 인간 이 출간되었다. 등단작을 포함해 「실수하는 인간」, 「너를 닮은 사람」, 「폐쇄되는 도시」, 「돌아오다」, 「지나간 미래」, 「이곳에서 얼마나 먼」, 「빛나는 상처」 까지 총 여덟 편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다.

정소현 소설의 집중력은 가족, 좀 더 명확히 말해 엄마 에게서 출발한다. 소설 속 엄마들은 명백하게 일그러져 있다. 비정상적 부모는 아이를 억압하고 결국 심리적, 물리적으로 아이를 유기 한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시작한다. 내상을 입은 아이는 자라서 이상한 어른이 된다. 수월하게 자신의 악행을 합리화해 흔히 사이코패스라 불리는 악마적 인물, 혹은 체념하며 다른 모든 버려진 것들과 손을 잡는 윤리적 인물이 그 두 양상이다. 상처가 단단해지고 그것이 상처임을 인식하지도 못하는 아이는, 고통을 있는 그대로 감내해내다 정상과 비정상을 혼동하고 일상과 비일상을 가로지른다.


양장 제본서 전기
실수하는 인간
너를 닮은 사람
폐쇄되는 도시
돌아오다
지나간 미래
이곳에서 얼마나 먼
빛나는 상처

해설 : 실수하는 사회, 실수하지 않는 인간_김형중
작가의 말